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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박 유럽 여행-*/이탈리아-*

[🚗차박 유럽여행 8] 이탈리아-피렌체 (2), 베키오 궁, 시뇨리아 광장, 베키오 다리

by ✿( ღ'◡'ღ )✿ 2022. 8. 18.

#1 베키오 궁(Plazzo Vecchio)

 

피렌체 두오모 성당 거리를 벗어나

이번에는 베키오궁으로 가보겠습니다.

 

▒ 위치

 

베키오궁은 이탈리아 피렌체, 시뇨리아 광장에서

바로 보이는 곳에 있습니다. 우피치 미술관으로

가려면 이곳을 꼭 거쳐야 되지요. 

 

▲베키오 궁 모습

 

▒ 이름의 변화

 

13세기에 지어진 이 궁전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만큼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습니다. 

원래 이름은 'Palazzo della Signoria'.

현재의 이름인 '베키오 궁'이라는 이름은

피렌체에서 당시 가장 유력 가문인 메디치가가 

아르노강 건너편에 있는 Pitti 궁(피티 궁)으로

이전할 때 바뀌게 됩니다. 

그렇다면 그 많은 이름 중에 왜 하필 베키오 궁전

이라고 지었을까요?

이 부분은 아래 부분에서 역사를 알아보며 알려드리겠습니다.

Coming Soon!

 

▒ 역사

 

13세기, 피렌체의 시민들은 피렌체의 위대함을 

과시하고 공화정의 형태를 위한 기관을 두기 위한

장소를 확보하기 위해 궁전을 짓기로 합니다.

 

베키오 궁전의 건축은 피렌체 대성당과 산타

크로체 성당을 지은 건축가, Arnolfo di Cambio

(아르놀포 디 캄비오)에게 맡겨졌습니다. 

1299년~1314년 사이에 지어졌으며 16세기 후반에 일부가 추가되었습니다. 

 

베키오 궁 내부 모습
▲베키오 궁 내부 모습

 

16세기에 피렌체 지역에서 가장 영향력 있던

메디치가의 코시모(Cosimo) 1세 메디치 공작은

1540년 5월에 메디치가의 위엄을 과시하기 위해,

라르가 거리에 있는 메디치 궁전에서 시뇨리아 궁

(지금의 베키오 궁)으로 거주지를 옮깁니다.

이후 거주지를 피티(Piti) 궁으로 다시 옮기는데

이 때 원래의 궁전 이름을 바꾸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이탈리아어로 '옛 궁전'을 뜻하는

베키오 궁이라는 이름이 붙게 된 이유이지요.

vecchio는 '오래된, 옛날의'라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이사간 후 코시모는 개인 거주지에서

베키오 궁까지 안전하게 이동하기 위해 조르조

바사리(Giorgio Vasari)에게 우피치 궁전을

통하여 베키오 궁에서 피티 궁까지 베키오 다리

위를 통과한 지상 통로 건설을 의뢰합니다. 

이 통로를 우리는 바사리 통로(Corridoio Vasariano)라고 부릅니다.

 

우피치 박물관을 방문하면 새롭게 복원된 바사리

통로를 통해 피티 궁전까지 갈 수도 있다고 하니

기회가 되신다면 코시모 데 메디치가 된 기분으로

한번 가 보시는 건 어떨까요?

 

베키오 궁전은 공화정의 중심에 있다 정치에서 

어느 정도 벗어 있었으나 1865년부터 1871년,

피렌체가 통일 이탈리아 정부의 임시 수도가

되면서 다시 한번 정치의 중심에 서게 됩니다.

 

현재 베키오 궁전의 대부분의 방은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지만, 여전히 시의회와 피렌체 시장

관저가 있기 때문에 피렌체의 행정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 베키오 궁 건축 특징

 

베키오 궁은 정육면체의 모습을 띠고 있고, 고딕

형식의 창이 두 줄로 있습니다. 거대한 건물 위에

94m 높이의 거대한 시계탑이 우뚝 솟은 모습이

장관입니다.

 

베키오 궁의 모습
▲베키오 궁의 모습

 

이 시계탑이 정중앙이 아니라 한쪽으로 치우친

이유는 건축가 캄비오가 고대의 탑을 원형으로

이 탑을 설계하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 베키오 궁 입구의 유명 작품

 

베키오 궁전의 입구에는 대리석 조각상들도 주목

해볼 만합니다. 

정문 바로 위에는 2마리의 사자와 가운데 태양이 

있는데요. 이 태양은 예수님을 상징한다 합니다.

그리고 그 아래에 이탈리어로 '왕들의 왕,

군주들의 군주'라는 문장이 새겨져 있습니다.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 복제본과 베키오 궁 입구 위 상징들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 복제본과 베키오 궁 입구 위 상징들

 

미켈란젤로가 만든 다비드 상도 여기서 볼 수

있지만 1873년에 조각상 보호를 위해 진품은

박물관으로 옮겨졌고, 현재 서 있는 것은 카피본입니다. 

 

▒ 가장 유명한 방 Sala del Cinquecento

(500인의 방)

 

베키오 궁에서 가장 유명한 방은 바로 500인의 방

입니다. 저는 드라마 속에서만 봤는데요.

이 방은 세로 52m, 가로 23m, 높이 17m로

피렌체에서 가장 큰 방이라고 합니다. 

 

1494년에 사보나롤라가 메디치 가를 쫓아내고

도시의 평의회를 구성하였는데 구성원 수가

500명이었기 때문에 방의 이름이 이렇게 붙여졌다고 하네요. 

 

바로 이곳에서 그 유명한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미켈란젤로가 최고의 걸작을 두고 대결

벌였다고 하니 더 그 의미가 크게 다가옵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미켈란젤로의 대결 결과는?

다빈치는 새로운 방법을 시도하였는데 물감의 

왁스를 굳게 하지 못하고 녹아내림으로써 대결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미켈란젤로 역시 시스티나 대성당 작품을

위해 교황에게 불려가면서 대결은 미완으로 남게 됩니다.

 

특별히 이 방은 댄 브라운의 소설 '인페르노'의

영화판에 등장하며 더 유명해졌습니다. 😉

 

#2 시뇨리아 광장

Piazza della Signoria

 

베키오 궁이 위치한 곳에는 시뇨리아 광장이 

있습니다. 이 광장은 수세기 동안 피렌체의

정치적, 사회적 중심지였습니다. 

광장에는 피렌체의 번영을 이끌었던 코시모 데

메디치(Cosimo de Medici)의 동상이 있습니다. 

 

시뇨리아 광장과 코시모 데 메디치 청동상
▲시뇨리아 광장과 코시모 데 메디치 청동상

 

저는 르네상스 예술을 적극 후원했던 이 메디치

가문에 대해 관심이 많은데요.

차박 유럽여행을 다 기록한 후 메디치가만 집중

탐구해 보겠습니다. 😁

 

#3 베키오 다리 Ponte Vecchio

 

베키오 다리는 '오래된 다리'라는 뜻에 맞게

아르노강 위의 다리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라고 합니다.

1345년에 건설되었고 로마시대의 마지막 다리로 알려져 있습니다.

 

아르노 강을 가로지르는 베키오 다리
▲아르노 강을 가로지르는 베키오 다리

 

제2차 세계대전 당시 1944년, 독일군이 강 양쪽

기슭의 집은 모두 파괴했으나 베키오 다리만

남겨두었다고 합니다.

 

원래 이 다리에는 푸줏간, 대장간, 가죽 처리장

등이 있었는데 지금은 금세공 상점들이 다양한

보석을 판매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산 보석으로 프러포즈를 하면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얘기는 어디에서 나온 것인지?)

 

베키오 다리 위 풍경: 다리 위를 늘어선 보석 가게 (feat. 시선강탈 킥보드 탄 아저씨)
▲베키오 다리 위 풍경: 다리 위를 늘어선 보석 가게 (feat. 시선강탈 킥보드 탄 아저씨)


다리 한 가운데에서는 거리의 악사가 기타를 

멋지게 연주하고 다리 너머로는 오늘의 사명을

다한 해가 퇴근을 준비하네요.

즐거움으로 상기된 사람들의 기분까지 어우러져

낭만의 피렌체가 됩니다.

 

베키오 다리 서서 바라본 아르노강 풍경
▲베키오 다리 서서 바라본 아르노강 풍경

 

다음 이야기는 피렌체에서 만난 유명인사 편!

기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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